9장 초반부에서 저자는 웃시야를 독자에게 소개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웃시야는 이스라엘을 경제, 정치, 군사적 강국으로 이끌었다. 그는 마치 다윗과 솔로몬 시대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을 다시 한번 강국으로 키워갈 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는 교만해졌고 그로 인해서 문둥병에 걸리고 그를 통해서 이뤄지려고 했던 하나님의 비전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마치 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 한국과 마찬가지로 보인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되고 스포츠에서도 세계 여러 나라와 겨루어 이기는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한류와 K-pop을 통해서 문화를 이끄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교만해졌고 결국 자살률 1위라는 불행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사야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큰 의미가 다가온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마주한다. 하지만 그는 바로 탄식하게 된다. 그 이유는 입술의 부정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한국도 분노의 시대에 살아가면서 꿈은 사라지고 화만 남은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점차 독설가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 가운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점도 우리에게 심각함을 느끼게 해준다. 결국 한국도 입술의 부정함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사야가 자신의 악한 실상을 깨닫는 것은 마치 베드로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베드로는 주님을 만나고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돌이킴을 갈망한다. 이는 이사야와 마찬가지의 모습임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웃시야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로 불을 마음대로 하려다가 부정함을 받았다. 하지만 이사야는 숯불 즉 향로로 그의 죄가 깨끗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한다. 즉 비전을 본 사람은 자기 자신도 변하지만 더 나아가서 남도 변화시키는 사명자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적이 삶을 이끄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어떠한 비전인지 그리고 누구의 목적인지가 더 중요하다. 나 자신의 비전이나 목적이 아닌 하나님의 비전과 하나님의 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비적 체험이 단순히 영적 희열로 끝나서는 안된다. 거기서 더 나아가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꿈을 얻고 소명의 실천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저자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를 예로 들면서 이를 강조한다.
최고의 환상은 메시아의 비전이다. 헛된 몽상인 우상 숭배와는 다른 것이다. 특히나 구약에서는 형상화된 우상을 경고했지만 신약에서는 형상이 아닌 우상을 경고하고 있다. 즉 자기 자신을 투영하여 나오는 우상들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밖으로의 파괴가 아닌 안으로부터의 붕괴이다. 이러한 우상 숭배와 대조적으로 메시아의 비전은 우리에게 비전의 치유와 회복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비전은 웃시야 시대의 소망이 완전히 무너진 뒤에 나타났다. 이는 마치 아담의 범죄, 아브라함과 롯의 헤어짐, 포로가 된 다니엘, 유배된 사도요한의 사건 뒤에 비전이 나타난 것과 유사하다. 즉 어려움과 시련이 있고 마치 소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 같은 시점에서 하나님게서는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비전이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를 이끄신다는 것이다.
새 예루살렘의 비전은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에덴 동산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의 회복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번창하는 산업의 중심지이자 항구 도시의 모습이다. 이는 천국이 비어있는 영적 공간이 아님을 우리에게 알려준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는 메시아가 가져오는 새로운 질서를 보여 주는데 이는 실질적 변혁을 이야기한다. 단순히 현실을 비판하는 세상의 유토피아와도 다른 점이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의 주권과 권위의 회복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비전은 우리에게 새 힘을 제공해준다. 소년과 장정도 다 넘어지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새 힘은 단순히 충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절말적 상황에서 자신의 시야에 매여 소망을 잃는 것이 아니라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의지할 수 있다. 그리고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기다릴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새 힘을 얻는 것이라고 저자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p.165 "... 모든 형통은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 은혜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가 교만해지자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마치 솔로몬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합니다. ..."
p.166 "... 웃시야가 솔로몬 이후 잃었던 그 항구를 탈환한 것입니다. ... 이런 웃시야가 교만으로 위기에 빠졌습니다. ... 결국 그는 폐위당하고 궁궐 깊이 숨어 살다가 죽고 맙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스라엘의 비전도 닫혔습니다. ..."
p.167 "... 그러나 우리는 지금 어느 때보다 불행합니다. OECD 국가 중 8년째 자살률 1위라는 부끄러운 기록이 그 증거입니다. 젊은이들이 꿈을 잃고 방황합니다. ..."
p.168 "... 분노로 마음이 뒤집힌 입술은 욕설, 고함, 저주로 불붙습니다. ... 요즘 우리 사회는 말이 너무 거칩니다. ...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두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것 같습니다. ..."
p.169 "...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은, 신비체험을 자랑하기보다 자신의 죄를 구체적이고 명백하게 깨닫고 돌이키는 것을 갈망합니다."
p.170 "... 이사야가 전할 메시지는 회개였습니다. ... 비전을 본 사람은 남도 변화시키는 사명자로 거듭납니다. ... 마음이 변화되어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 자신의 목적과 비전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 길을 갈 수 없습니다."
p.171 "... 신비체험이 영적 희열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흥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잘못된 현실을 바꾸는 소명의 실천으로 나아갑니다. ... 최고의 환상은 메시아 비전입니다. ..."
p.173 "... 이사야가 본 환상들은 히브리어로 하존입니다. 이는 눈으로 보는 것뿐 아니라 말씀을 들을 때 생긴 심상도 포함합니다. ..."
p.174 "... 구약성경은 형상화된 우상을 경고합니다. 하지만 신약은 형상이 없는 우상을 더 주목합니다. ... 신약에서는 정욕과 탐심을 우상화합니다.(갈 5:24) ... 우상이란 대부분 엄청난 위력과 괴물 같으나 결국 우리 자신의 투영일 뿐입니다. ..."
p.175 "... 불안한 시대일수록 우상이 들끓습니다. ... 구별되지 못한 삶이 징계를 부른 것입니다. 그것은 밖으로부터의 파괴가 아니라 안으로부터의 붕괴입니다. ..."
p.176 "... 소망이 완전히 무너진 곳에 이 비전이 비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 이 비전은 우상이 주는 것과 달리 빛이 바래지 않습니다. ... 이사야가 본 천국, 곧 하나님 나라는 두 가지 모습입니다. 먼저, 에덴 동산과 같이 모든 짐승들이 평화롭게 지내는 아름다운 자연으로 그려집니다(사 11:6-8, 65:25)."
p.177 "... 이와 함께 상당히 다른 천국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번창하는 산업의 중심지요, 항구 도시로 그려진 천국입니다(사 60장). ... 천국은 비어 있는 영적 공간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그곳은 우리가 아는 도시와 상당히 흡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 물론 그곳은 새롭습니다. ... 메시야가 가져오시는 새로운 질서입니다. ... 하나님의 주권과 권위가 회복됩니다. ..."
p.178 "... 비전은 미래를 바라볼 소망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지쳐 쓰러진 사람에게 일어날 힘을 줍니다. ..."
p.179 "... 이사야는 이런 메시지를 대조법을 써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포로 된 이스라엘과 천지의 창조주요 주재이신 하나님의 대조이며, 둘째는 소년과 장정이라도 가진 힘을 잃고 넘어지고 자빠지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새 힘을 얻는 모습이 그것입니다."
p.180 "... 자신의 시야에 매여 소망을 잃지 말고, 눈을 들어 천지의 주인이요 통치자 되신 주님을 바라보라는 말입니다. ..."
p.181 "... 힘을 새로이 채워 주시되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상상을 초월하여 채워 주신다는 확언인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비전은 이런 힘을 줍니다."
웃시야 왕의 시대에 이스라엘이 다시 한번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지도자의 교만으로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가장 크게 깨닫게 되는 것은 역시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교만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교만이 단순히 나 자신만을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에도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은 나에게 상당히 크게 경각심을 가지게 한다.
지금 현재 한국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 저자가 한국이 마치 웃시야 왕의 몰락 이후의 시대와 비슷하다고 경고하는 부분을 통해서도 왜 한국이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나라가 되었고 분노가 가득해서 나누어지고 서로를 공격한느 분노의 시대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안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시대에 같이 물들어서 세상 사람들보다 더 악한 행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나에게 마찬가지로 경각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서 살아갈 수 있고 교회를 개혁하고 세상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바꾸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다행히 이에 대한 해결책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그전에 이사야가 숯불로 입술의 부정함을 깨끗하게 됨을 입었던 것 같이 나도 나의 마음과 입술의 부정함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회복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나는 이사야와 마찬가지로 비전을 본 사람으로 나 자신도 변화시키고 나아가서 남도 변화시키는 사명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의 핵심은 메시아 비전으로 단순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비전의 치유와 회복을 통해서 장차 올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이것은 단순히 현실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권위가 완전히 회복되는 것임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단순히 천국을 세상의 유토피아나 비어있는 영적 공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져야 하는 자세는 이러한 것들이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앙망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갈 때에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에 나에게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시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의지하며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① 웃시야가 하나님을 따를 때에 하나님의 비전을 성취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다는 사실과 교만하여 실패하고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하나님의 비전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어떤 생각을 하게 하는가?
② 분노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한국 사람으로 꿈은 사라지고 화만 남았다는 사실과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올바르게 살아가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 사람보다 악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나에게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가?
③ 이러한 절망적 상황에서 내가 의지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과 권위의 회복을 나타내는 메시아의 비전이라는 사실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의지하며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기다리는 것이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새 힘이라는 사실은 나에게 어떤 생각을 하게 하는가?
Written by James Choi (The Miracle)
[Book Review/기독교세계관] 지금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11. 포로 소년과 황제의 꿈 | 다니엘 (28) | 2024.08.07 |
---|---|
[Book Review/기독교세계관] 지금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10. 해골도 살려 내는 비전: 에스겔 (16) | 2024.02.22 |
[Book Review/기독교세계관] 지금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08. 왕이 된 목동의 비전: 다윗 (38) | 2024.01.31 |
[Book Review/기독교세계관] 지금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07. 두 여인, 두 아이의 비전: 사무엘 (61) | 2024.01.27 |
[Book Review/기독교세계관] 지금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06. 꿈을 잃은 시대의 비극: 여호수아 (29) | 2024.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