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비전은 아브라함을 따라서 이삭 그리고 이삭의 아들들로 연결된다. 1세대인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믿음의 조상으로 살아간 것을 우리는 확인했다. 그리고 2세대인 이삭은 그러한 아버지에게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비전을 이어갔다. 하지만 3세대에 오니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가는 삶에 있어서 위기가 찾아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는 실제로도 3세대가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서 살아갈 때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고 경고하고 있다. 심지어 3세대가 온전히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서 살아가지 못할 때 4세대는 완전히 신앙을 저버리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3세대의 야곱과 에서는 어떤 부분에서 신앙의 위기를 겪게 되었을까? 에서는 남자다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에는 관심이 없었다. 즉 명목상 신앙인이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야곱은 야망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에는 관심이 많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야곱의 욕심과 야망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쟁취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되어 결국 왜곡된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한국 기독교는 3세대 또는 4세대 신앙인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3세대 또는 4세대 신앙인들 중에는 야곱과 에서와 같이 명목상 신앙인들과 왜곡된 신앙인들이 많은 것을 저자는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 이유는 야곱과 에서와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언약에는 관심이 없고 습관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에서와 같은 명목상 신앙인으로 변질되고 하나님의 언약에는 관심이 있지만 야망과 욕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야곱과 같이 왜곡된 신앙인으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놀랍게도 순종의 사람으로 유명한 이삭도 실수를 범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잊게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에서와 야곱이 출생할 때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 이삭과 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잊으려고 하고 야곱은 자기 방식대로 이해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결국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고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일단 이러한 상황을 놔두신다. 결국 신앙인들은 불행해지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욕심과 야망은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비전은 정의와 평화로 가득차있다. 하지만 야망은 하나님이 아닌 이기심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자기중심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욕심과 야망으로 가득 찬 야곱에 대해서 저자는 아버지와 형제에 대한 도리를 무시하고 가족의 화평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비전도 위태롭게 하는 행동을 행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야곱은 이러한 욕심과 야망으로 인해서 도망자 신세가 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서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야곱은 야망으로 인해서 약속의 땅에서 다시 갈대아 우르로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줌을 저자는 이야기 한다. 그리고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빼앗고 심지어 장자의 축복까지도 빼앗아서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음에도 야곱은 계속해서 야망을 추구하면서 나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을 추구하고 부를 추구하는 모습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야망을 따라서 살아간 야곱은 세겜에서 딸 디나의 사건과 요셉의 사건을 통해서 시련을 겪는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명목상 신앙과 왜곡된 신앙의 위험성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있지 않은 것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하나님의 비전과 상관없는 신앙인은 세속화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러한 세속화는 하나님과 멀어지고 세상적인 그리고 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비전의 위기 속에서 다시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찾아가셔서 은혜를 베푸시고 벧엘의 비전으로 회복시키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비전을 이어가도록 사람들을 변화시키신다. 이삭은 창세기 27장에서 세속적 축복을 빌었지만 창세기 28장에서는 하나님의 언약과 뜻을 따르는 아브라함의 복을 비는 모습을 보인다. 리브가는 야곱을 편애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다시 형제 모두를 생각하는 모습으로 변했다. 에서는 가나안의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했지만 이스마엘의 딸을 다시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야곱은 야망을 따라서 살았지만 벧엘에서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서 살아가도록 변화된다.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지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으로 이를 충실히 따라간다. 그리고 이삭은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하면서 나아갔다. 그리고 야곱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이 이어져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처럼 순종의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하지만 순종치 않는 야곱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아가도록 야곱을 변화시키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언약 즉 비전은 인간이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체임을 다시 한번 저자는 강조한다.
p.64 “… 야곱은 어려서부터 야망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
p.65 “… 에서는 야곱과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 격정적이긴 해도 통이 컸고, 사내다웠습니다. … 문제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
p.67 “…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명백한 계시와 비전을 왜곡하고 내 마음대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 비전을 놓고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 앞에 자신을 낮추어 따르려는 마음입니다. … 비전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반면 야망은 이기심에서 비롯됩니다. …“
p.69 “… 아브라함은 믿음을 가지고 비전 속에서 이 길을 내려왔었습니다. 야망에 눈이 멀어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잃은 야곱은 그 길을 되돌아 올라가고 있는 중입니다. …”
p.71 “… 꼬일 대로 꼬인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 난관을 극복합니다. 그 해결의 시작은 ‘벧엘의 비전’입니다. …“
p.72 “… 도망하는 야곱은 집에서 쫓겨났으나, 벧엘 곧 ”하나님의 집“에 돌아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 자기 정체성과 방향, 그리고 계획을 회복합니다. …”
p.74 “… 이삭은 번제물이 될 뻔한 상황에서도 순종했던 사람입니다. 개인적인 언약을 받지 않았음에도 평생을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서 살았습니다. 야곱은 그와 정바낻의 사람입니다. 이런 야곱에게 언약이 주어진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p.77 “…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잠재우시고 그의 야망도 잠재우십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그 아름다운 꿈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 개혁신앙은 유아세례를 강조합니다. 신앙교육도 그 출발점이 교회가 아니라 가정임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신앙이 유전되는 것은 아닙니다. … 셋째 세대에 그 위험이 가장 크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넷째 세대에는 아예 신앙을 버리기 때문입니다.”
p.78 “… 삼 대째 신앙인인 에서는 글자 그대로 명목상의 신앙인입니다. 야곱은 왜곡된 신앙인입니다. …“
p.79 “… 신앙인은 비전을 잃으면 곧 세속화됩니다. … 각 세대가 하나님을 만나는 실존적 체험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 지금 여러분은 여기서 무엇을 꿈꾸고 있습니까?”
야곱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었던 점은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우선 야망과 욕심으로 가득 찬 신앙인의 위험성에 대한 부분과 이러한 신앙인이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만나는 실존적 체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야망과 욕심으로 가득찬 신앙인은 왜곡된 신앙인이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비전을 잃은 신앙인은 명목상 신앙인이 된다. 이러한 것은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나 한국 기독교의 현재 세대는 대부분 3세대나 4세대이다. 즉 야곱과 에서와 마찬가지의 세대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현재 한국 기독교에는 많은 신앙인들이 왜곡된 신앙인이거나 명목상 신앙인인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전체 인구의 20%가량을 기독교인이 차지하고 있지만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라는 설문조사에서 놀랍게도 ‘물질적인 가치’가 1위를 하는 유일한 나라가 되어 있다. 즉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서 살아가는 신앙인은 없고 대부분이 왜곡된 신앙인 또는 명목상 신앙인으로 물질적인 가치를 따라서 살아가는 세속화된 신앙인이 대부분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시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그래도 희망적인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야곱의 예라고 생각이 된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우리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먼저 찾아오시고 우리에게 다시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서 살아갈 것을 요구하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실존적 체험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물질적 가치를 따라서 살아서는 하나님의 비전을 따르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우리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⓵ “나는 혹시 에서와 같이 명목상 신앙인이거나 야곱과 같이 왜곡된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없는가?”
⓶ “나의 삶에서 가장 우선되는 가치가 혹시 물질적인 가치는 아닌가? 혹시 그렇다면 그러한 경우는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자.”
⓷ “다시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서 살아가기 위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실존적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면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나의 삶을 바꿔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 This Book Review is Written by "The Mirac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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