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부분 나이가 들면서 정착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게 되면 새롭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미 정착해서 지내야 할 나이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비전은 아담의 타락으로 노아로 연결되고 바벨탑 사건으로 타락한 이후에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에게 연결된다. 아브라함은 셈의 후손으로 그 당시 가장 발전된 곳인 지금의 바그다드 근처인 갈대아 우르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대대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켜갈 사람으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다가오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직접적으로 나타나심은 홍수 이후에는 특별한 경우이다. 하나님은 민족의 조상이자 축복의 통로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다가오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떠날 것을 명령하신다. 그리고 놀랍게도 75세였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서 바로 순종하면서 나아간다. 이렇게 하나님과 아브라함은 약속과 믿음의 관계로 연결된다. 그리고 여기서 놀라운 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오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언약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약속 즉 언약은 신앙의 중심이 된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비전이 된다. 그 비전은 바로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인 이스라엘이 형성될 것이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될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미래에 대한 약속이기에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러한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비전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를 때 아브라함은 비전에 붙잡히게 되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어떻게 비전을 다라서 살아갈 수 있을까? 저자는 이것에 대해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우선 비전이라고 하는 것이 장래의 유업이지 현재의 상급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삶의 익숙한 것과 안정적인 것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비전의 실체를 경험하는 방법은 오직 신앙과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그래서 로마서 4장 18절에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어"라고 아브라함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왜 참된 믿음이고 비전을 따라가는 사람의 모습인지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열정과 헌신은 일치하지 않는다.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온 부자 청년을 예로 들면서 이를 우리에게 설명한다. 열정이 있다고 헌신으로 항상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전은 새로운 삶으로의 초대이며 동시에 헌신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헌신은 사람의 힘으로 가능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은혜를 받고 도전을 받게 된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결단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이후에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비전을 인식하는 방법은 바로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비전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이 바라는 것처럼 성공이나 축복으로 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비전은 시련으로 연결이 된다. 그리고 믿음과 함께 그것을 인내함으로 비전을 따라서 살아갈 수 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저자는 이를 우리에게 설명한다. 아브라함은 대표적인 세 가지 약속들을 받았다. 우선 땅에 대한 약속을 받았고 둘째, 자손에 대한 약속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복의 근원이 될 것임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이는 바로 시련과 연결이 되었다. 첫 번째 약속인 땅에 대한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정착의 어려움이라는 시련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두 번째 자손에 대한 약속도 이삭을 얻기까지 수많은 시간과 어려움이라는 시련을 가지고 왔다. 마지막으로 복의 근원이라는 약속과 다르게 아브라함은 수많은 싸움에 자주 휘말리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비전의 사람은 이러한 시련 속에서 일반적인 사람과는 다른 안목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이를 아브라함과 롯을 비교하면서 설명한다. 아브라함과 롯이 각자 다른 땅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롯은 현실적으로 가장 부유한 도시로 보여지는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한다. 하지만 그곳은 죄악의 도시이고 심판을 받을 땅이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험한 산지로 보이는 곳이지만 약속의 땅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후에 소돔 왕을 전쟁 속에서 구하고 소돔에 정착할 수 있는 호의적인 제안을 받았을 때도 그것이 실상은 비전을 버리게 되는 유혹임을 깨닫고 거부하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살아가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환상을 통해서 위로해 주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아브라함을 통해서 우리는 비전을 따라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답하시는 지를 볼 수 있다. 비전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을 하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면서 나아간다. 약속을 받은 그 순간에 보여지는 실물이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는 비전의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벗으로 다가오신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는 표현을 유일하게 받았던 사람이었음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께서는 비전의 사람에게 자신의 계획을 보이신다. 실제로 비전의 사람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장기적으로는 세상을 축복하기 위한 통로로 삼으실 계획을 알려주시고 단기적으로는 소돔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려주신다. 즉 비전의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을 저자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p.49 "... 하나님을 만난 사람에게는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심이 없습니다. ... 인간이 하나님을 모른다 함은 무지가 아니라 억지일 뿐입니다. ..."
p.50 "...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깊고 단단해져 갑니다. 약속과 믿음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약속은 신앙의 중심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책임을 부과하실 뿐 아니라 책임을 지는 관계 맺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 믿음의 주어는 우리가 아닙니다. 믿음은 비전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께 응답함으로 시작됩니다. ..."
p.51 "... 비전은 허상이 아니지만 현실도 아닙니다. 비전의 실체를 경험하는 일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어" 모든 믿는 이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
p.52 "... 하나님께서 꿈을 주셨다고 해서 그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순종해야 현실이 되기 시작합니다. ..."
p.54 "... 하나님께서는 비전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도 비전에 합당하게 만드십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쉬지 않고 연단하십니다. 그래서 비전의 사람은 인내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인내는 믿음 없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비전의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
p.56 "... 비전의 사람은 안목이 다릅니다. ..."
p.58 "... 훗날 아브라함에게 소돔 땅에 정착할 수 있는 기회가 옵니다. 앞서 본 대로 소돔 왕이 호의적인 제안을 했을 때입니다. 이것은 기회가 아니라 유혹입니다. 연단보다 더 힘든 것이 유혹일 수 있습니다. ..."
p.59 "... 약속은 실물이 아니라 말입니다. 말을 믿는 것은 그것을 말한 사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 믿음은 하나님께서 행하심을 신뢰를 가지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신앙생활의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의 벗이 되는 것입니다. ..."
p.62 "... 하나님을 만나 사귀어 친구가 되면, 내 개인적인 일을 할 뿐 아니라 그분의 일에 동참하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일방적인 통고가 아니라 의논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 이런 사람이 세상을 바꿉니다. ..."
본향을 찾는 나그네의 비전에서 왜 아브라함이 비전의 사람이자 믿음의 조상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항상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자 축복의 통로라는 것을 생각하고는 하는데 이를 실제로 나의 삶 속에서 적용해보고 비전을 따라가는 사람의 본이 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나의 삶속에서 그려봐야겠다고 생각을 해 본 적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비전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하게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비전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우선 정확한 비전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실제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즉 그러려면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현실적이고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비교해서 확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적인 축복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리어 비전은 시련을 가지고 오고 이를 믿음 안에서 인내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조금 어려움이 오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믿고 신뢰하면서 시련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것이 비전의 사람이 나아가야 하는 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많은 경우 삶을 살아가면서 은혜도 받고 도전도 받고 심지어 기도를 통해서 결단을 하면서 나아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 자리를 지나가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게 되면 그러한 것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저자의 말이 상당히 나에게 울림을 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렇게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과 비전들을 믿음을 통해서 주님을 신뢰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깨닫는 것은 어떻게 본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실제 삶에서 적용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첫 번째 질문은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의 비전으로 잘못 이해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이다.
두 번째 질문은 "이러한 하나님의 비전이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데 이것이 우리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오심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세 번째 질문은 "그동안 비전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세상적인 물질적인 축복들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으로 잘못 오해하고 있지 않았는가 그리고 비전이 시련을 가지고 온다면 나는 어떻게 믿음으로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서 살아갈 것인가"이다.
네 번째 질문은 "그동안 은혜, 도전을 받고 기도로 결단을 했지만 실제로 믿음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것들은 무엇이 있었으며 그렇다면 앞으로는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행동으로 옮기면서 살아갈 것인가"이다.
- This Book Review is Written by "The Mirac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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